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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 1【성서】 바벨 《Babylonia의 고대 도읍》;바벨탑(=the Twer of ) 《고대 Babylon에서 하늘까지 닿도록 쌓으려다가 실패한》 2 [보통 b~] 왁자지껄한 소리, 언어[음성]의...
어제 롯데 씨네마의 문화산책은 <바벨>관람이였습니다.
142분의 상영시간(2시간 30분)의 시간동안 내어쉰 한숨은 몇번이였는지 카운터를 못했네요
창세기의 바벨탑처럼
소통되지 못하여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 퍼져나가는 여러곳의 이야기들
바벨의 제목을 보는순간 바벨탑이 떠올랐고
이내 서로 감상과 함께 그 소통될 수 없는 이야기에 촛점이 맞춰짐을 알게되었지요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편집상,작곡상에 노미네이터 (수상예정작의 명단에 등재)되어있는 영화입니다.
위의 상은 영화의 작품성에 근거하여 충분히 그러하다고할 수 있네요
미국이 쉽게 다룰 수 없는인간 내면과 정치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깊은 통찰로 만드어진 영화로
마땅히 수작이라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한 부분 더!
여우조연상!
저는 그 부분은 유모 에밀리아를 연기한 멕시코 배우(아드리아나 바라자)일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녀의 표정안에서 멕시칸의 현실과
그리고 다시 잃어버리고 버려지는 아메리카의 드림이 절절하게 녹아있었거든요
영화의 내용과 긴~ 애기는 한분씩 감상문처럼 올려보시면 어떨까요?
영화의 줄거리
영화는 먼저 모로코의 가족이 양들을 지키기위해 총을 갖게 되면서 출발한다.
보호를 위해 구입한 한자루의 총
모로코와 미국 그리고 멕시코와 일본 지구의 각각 다른 곳의 이야기는
결국 총의 사건들과 연관되어 진행된다.
장난삼아 시작한 총의 시험사격을 하는 형제의 어린행동이
결국 아이를 잃고 고뇌하던 미국인 관광객부부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고
이 치명적인 사건으로 그 부부의 아이를 돌보던 멕시칸 유모의 문제로 연결되어 간다.
아이를 대신 맡길 곳을 찾지 못한 유모는 자신의 아들 결혼식에
보살피던 미국 아이들을 동반해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 결혼식을 참석하게 하였고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려던 국경에서 문제가 되어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16년 동안 미국에서 이뤄논 그녀의 꿈과 생활은 한순간 사막의 모래처럼 사라지게 된다.
한편 모로코에서 총에 맞은 미국인 리처드의 아내는
그들이 적대시 하던 아랍인들에 의해 치료되고 구조되며
인간의 진심과 잘못 만들어진 경계들 간에서 소통을 이루게 되는데
총상의 문제를 '테러리즘'의 시각으로 확대해석하는 미국인들과 미국사회의
스스로의 거대증과 무의식의 공포가 인간의 구조보다 앞서 작용하게 된다.
사건의 총이 일본인 관광객의 사냥총으로 추적되면서
지구 반대편 일본의 상황이 영화안을 비집고 들어온다
일본의 청각장애인 치에꼬 는 엄마의 자살을 목격한 뒤 어느누구에게도 진정한 소통을 느끼지 못하고
같은 장애친구들과 반항적인 방황을 한다.
소통을 노력하는 아버지에게조차도 스스로 소통을 단절시키던 그녀가
소통을 원하던 다른 이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문제의 총의 이동경로를 쫒던 젊은 형사에게서 비로소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 후 그녀의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이 총에 의한 자살임을 형사에게 밝힘으로서
마음의 잠궜던 빗장을 풀고 아버지에게 기대어 소통을 받아들인다.
원래 총의 소유했던 일본인의 아내도 총에 의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의 취미는 사냥이였으며 그가 사냥한 동물들의 박제는 자랑스레 그의 거실에 전리품으로 놓여있다.
총이 취미의 도구에서, 살생의 무기로 그리고 가족의 죽음의 도구로...
'위대한 미국'을 부르짖는 미국인 답게 총상의 부상자 보다는 언론플레이에 열심이던 미국은
후진국의 의료체제나 교통수단 안전조치등을 불신하여 응급체제에 제동을 걸며
시시각각 위험해져가는 환자를 방치하고
함께 여행했던 관광객들도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속에 부상자를 남기고 떠나버린다.
믿었던 이들의 외면과
불신과 적으로 규정된 사회안에 남겨진 리처드 부부는
인간이 갖는 원초적인 보살핌 속에서 서로가 비로소 마음의 열게 되고
우여곡절끝에 병원에 후송되어 수술을 받게 된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던 리처드는 어린 아들과 통화속에서 진정으로 가족들과의 소통(아이의 학교의 수업시간의 자잘한 해프닝을 들으며 그 것들--일상의 모든것--의 소중함에 눈물 흘린다.
아들의 결혼식을 참석하고픈 멕시코 보모 에밀리아는 보살피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카의 차를 타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 사랑하는 그녀의 가족을 만나고
책임감에 어두운밤 다시 국경을 향해 길을 재촉하게 된다.
하지만 운전하던 조카가 멕시칸에 대하는 국경수비의 모욕에 이성을 잃고 반항하면서 일을 꼬여버린다.
사막 한 가운데 남겨지는 아이들과 에밀리아
어둡고 낯선 황무지에서 밤새 지친 그들은 길도 잃은체 헤메다
에밀리아느 아이들은 나무 그늘에 누여놓고 구조를 요청하러 사막을 헤멘다.
그녀의 모습은 결혼식장에서 행복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바뀌어 하룻 밤새 야위고 초췌한 모습으로 절규에 가깝게 외친다.
'아이들을 살려야 해요'
그러나 국경수비대는 아이들의 안전보다는 범죄자의 검거가 우선시 되고
절차를 다 밟은 뒤 수색에 나선다. 그러나 아이들을 찾으러 다녀도 아이들은 찾을 길이 없다.
그 낯선 황무지 안에 어디로 아이들이 갔을까? 애통하고 눈물흘리며 안타까워하는 에밀리아가 겨우 아이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것은 경찰서에서였고
안도의 숨을 돌릴틈 없이 추방을 명령받는 불법체류자의 종결을 맞이하게 된다.
16년 동안 이뤄놓은 미국에서의 삶은 범죄자의 삶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게 되고
지치고 모든것을 잃은 그녀를 데리러 온 지난밤 결혼식을 한 그녀의 아들과 눈물의 포옹을 한다.
지난밤 이곳-멕시코에서 일이 잘 안되면 엄마에게로 갈께요 했던 그녀의 아들에게 그녀는 이제 빈손인체 위로를 받는 것이다.
철 없이 총에 대한 장난 삼아 그리고 아이다운 경쟁심으로 벌인 사격이
엄청난 비극이 되어 가족이 위험해지고
두려움으로 도주하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된 어린소년에게
가난했지만 단란했던 삶은 무너지고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표현하지 않았던 형의 사랑의 마음이 눈물로 흐르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후회스러움으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세상을 보는 시각--중동에 대한, 남미에 대한...
미국이 가지는 세상일들의 시각--늘 테러에 대한 공포로 911이후 모든 사건의 배후에 미국의 음해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병적인 음로론에 전전긍긍해 하는 ...
미국의 입김에 피해가 올까봐 전전긍긍해야하는 주변 나라들--자국민의 인권보다는 미국의 눈치에 여념없는 모로코 경찰, 멕시코 군경수비(아이러니 하게 그들의 출신도 남미계다 )
그리고! 총기휴대가 벌일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보호용이 파괴용으로 결국 파멸의 길로...
이런 관점으로 영화를 파악할때 수작임이 틀림없다.
단! 영화 끝나기 전까지 줄거리를 파악할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것!
2007년 2월 22일 첨단롯데씨네마 <바벨> 관람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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