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끝없는 이야기

2013년 뉴욕 아모리쑈를 가다 - 이묘숙

queenl 2013. 5. 11. 09:04

 

2013 THE Armory Show를 가다.

 

 

이 묘 숙 (송은 갤러리관장, 갤러리 아크 관장, 미술 평론가)

 

Oh New York! 뉴욕! 바로 그 뉴욕을 거닐며 미국의 미술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아모리쑈를 관람하고 뉴욕의 아트마켓의 한켠에서 미술계의 움직임을 느껴보고 오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보여 지던 멋진 뉴욕을 동경할 것이다.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으로 대변되고 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환상적인 미국의 대표적인 도시이자 세계의 경제와 무역의 중심도시이다. 뉴욕은 회색빛 빌딩사이에 낭만과 세련된 모습 그리고 뉴요커로 불리는 그들만의 깔끔한 멋이 느껴지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도시의 여러 지역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국제적으로 예술시장에 중요한 허브로 자릴 잡고 있다.

오늘날 뉴욕은 예술계에 있어 현대미술의 메카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짧은 역사의 미국이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현재의 기반을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재미있게도 거대한 하나의 전시에서 발단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3310일 현대적이고 동시대적인 예술을 선도하는 2013 더 아모리 쑈(The Armory Show) 현대미술박람회가 100주년 기념 테마의 에디션을 마감했다.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을 낀 부두 9294에서 37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이 전시는 36일 개막 포럼을 시작으로 5일 동안 60,0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주요한 국제 딜러를 포함해서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210여 엄선된 갤러리들과 함께 한쪽에서는 새롭게 부상하는 신인들이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아모리쑈에 참여하는 갤러리는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는데 현대와 모던아트 걸작을 소장하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20년 이상씩 활동하는 갤러리들만이 그 벽을 넘는다.

아모리쑈에는 많은 갤러리들은 강력한 판매에 주목하였고, 안정된 전시와 아모리의 명성을 믿고 미국과 그 넘어의 주요 수집가들과 기관들이 참석 하였다. 92 부두는 모던아트가 94 부두는 컨템포러리아트로 나뉘어 진행된 전시에 한국에서는 국제 갤러리와 원앤제이 갤러리 2곳이 현대미술 분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아모리쑈의 핵심 파워는 아트페어답게 막강한 판매력에 있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니지만 몇몇 갤러리는 출품작들이 sold out(완판)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제법 성공적인 마감을 하였다.

 

100주년 기념 2013년 전시에서는 1913년 최초의 아모리쑈의 강렬했던 그 기억을 더듬는 처음 그 느낌을 경험 할 수 있는 코너를 만들어 두었다. 그 작은 코너에서 이제는 익숙한 현대미술의 초기작품들과 마주할 수 있다. 뒤샹과 브랑쿠시, 그리고 피카소의 작품이 축소되고 패러디 되어 전시 중이었고 관람객들은 100년 전 첫 전시에 대한 생각과 그로 인한 오늘날 현대 미술로 변화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 미술계와 뉴욕의 예술파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그 원류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의 집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모리쑈 전시장 곳곳에 준비된 휴식의 공간 들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의도된 하나의 전시품이기도 한 다양한 의자들은 거리의 의자(Street Seats)’란 프로젝트로 베이드 스타버그 콕스(Bade Stageberg Cox)가 디자인하고 아모리쑈에 제공한 것이다. 결국 이 의자작품들은 존재 이유인 그 목적성의 일치이기도 하다. 의자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구 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느 공간에 있더라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할 임무가 디자인에 앞선다 할 수 있다. 전시 공간 통로에 적절하게 놓여 진 의자의 역할이 관람객의 관람을 편안하게 하였으며 더군다나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의 휴식은 충분한 감상과 은근한 구매욕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구조적인 배려는 지극히 의도되고 세련된 전략이 아닐까 싶어 우리 전시장의 현실이 오버랩이 된다. 진행과 행정 편의적인 일방적 동선으로 관람객의 배려가 아쉬운 비엔날레 전시장과 아트페어의 비좁은 공간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아모리쑈의 성공은 관람객의 숫자가 아니라 그로인해 파급되는 다양한 현상 때문이다. 먼저 아트페어 이기에 간과할 수 없는 작품거래에 대한 부분이다. 가장 크게는 전시를 지원해주는 협력사로 참여한 크리스티 경매회사의 참여도 눈에 띄며 새로운 콜렉터 양상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주목하게 된다. 뉴욕시는 전시 기간 동안을 포함해서 6일 동안 아모리 아트 주간으로 정해 뉴욕 내 모든 지역에서 관련 전시를 진행하고, 각 지역의 날을 정해 그 지역에 전시를 집중할 수 있게 홍보를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검증된 고가의 작품들인 주로 전시된 아모리쑈와 달리 신진 작가와 실험적인 작품이 선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아트페어에 지원과 연계를 하기도 한다. 1회 아모리쑈가 열렸던 아모리빌딩에서 열린 파운틴 아트페어(Fountain Art Fair)도 그 중 하나이다. 금년 8회가 된 파운틴 아트페어는 젊고 생동적인 작품들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펼쳐지고 여기에 접근이 쉬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권위와 명성의 토대위에 신선한 예술들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고 있는 셈이다.

이는 새로운 미술 애호가를 양성하는 길이기도 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다양성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불어 아모리쑈 주최 측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며 새로운 컬렉터를 양성하기 위한 직접 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부담스럽고 어려운 세미나가 아닌 미술에 대한 접근을 돕는 첫걸음을 인도하면서 차차 그들이 구매자로 미술애호가로 성장하도록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아모리쑈가 열린 기간 뉴욕은 때 늦은 눈보라와 바람결 추위가 느껴지는 궂은 날이었다. 그러나 뉴요커들과 미술애호가들에게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 날이기도 했다. 수많은 관람객들은 기꺼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또 뉴욕의 미술관과 갤러리로 기꺼이 걸음을 옮겼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끄는 것일까? 일주일 동안 맨해튼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느꼈던 바로 그것. 뉴욕은 문화 예술이 살아있는 진정한 도시라는 것. 바로 내재된 도시의 힘과 역량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용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완전한 준비가 짧은 역사의 미국을, 뉴욕을 문화와 미술의 강자로 만든 핵심은 아닐까 싶다. 뉴욕! 이제부터 뉴욕은 늘 그리울 도시가 될 것 같다.

 

 

아모리 쇼 [Armory Show]

아모리 쇼 공식 이름은 국제현대미술전시회이다. 1913217일부터 315일에 걸쳐 뉴욕 시에 있는 제69연대의 무기창고에서 개최된 전시로 회화 와 조각이 주된 전시회였다. 당시에는 처음 열리는 국제적인 전시에 30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들이 1,600여 점의 출품작을 관람했을 정도로 큰 사회적 이슈였다. 이때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전시회의 3분의 1정도가 유럽 모더니즘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앵그르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인상파·상징파·후기인상파·야수파·입체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이 전시회로 미국 대중들은 처음으로 유럽의 진보적인 미술을 접촉하게 되었고 이 전시회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셀 뒤샹의 입체파 회화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 Nude Descending a Staircase, No. 2에서 충격을 받았으며, 뒤샹만이 아니라 앙리 마티스, 콘스탄틴 브랑쿠시, 월터 패치의 작품에 대해서도 상당히 거부반응이 강했다. 그러나 이 전시회는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새로운 미술품에 대한 충격은 새롭게 펼쳐지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더 큰 시야를 갖게 만들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많은 미국인들이 중요한 개인 소장품을 갖게 된 기반이 되었으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국에서 최초로 폴 세잔의 작품을 구입한 미술관이 되었다.

아모리쇼는 무엇보다도 미국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모리 쇼는 미국 내에서 활동한던 작가들에게도 매우 큰 충격이었으며 작업방향에도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화가 조지프 스텔라, 존 마린, 조지아 오키프, 아서 도브는 아모리 쇼에서 용기를 얻어 전위예술을 계속해나갔다. 뒤샹 또한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이후 레디 메이드의 작품을 선보이며 팝 아트의 근간을 만들며 유명세를 얻게 되었으며, 에드워드 호퍼도 아모리쑈를 통해 미술계에 크게 부각되었다.